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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날

귀인 청솔 2012. 11. 14. 19:04

가을 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 위엔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


마지막 열매들이 영글도록 명하시어,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극의 따뜻한 날을 베푸시고,


완성으로 이끄시어 무거운 포도 송이에
마지막 단맛을 넣어 주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래도록 혼자로 남아서
깨어나,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뭇잎 떨어져 뒹굴면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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