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있는 그대로 -
희천의 제자 도오에게 숭신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도오를 지극 정성으로 섬겼지만
도오는 도통 그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하루는 숭신이 섭섭한 생각에 선사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스님,왜 제게는 가르침을 주지 않습니까?"
그러자 도오는 황당 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놈아,수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가르쳤드니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숭신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뭐라구요?
저를 하루도 빠짐없이 가르쳤단 말씀입니까?
도대체 언제 저를 가르쳤습니까?"
"허허,이놈 봐라!"
도오는 제자의 표정을 살피며 금방이라도
웃음을 터뜨릴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숭신은 화가 치밀었다.
"스님, 대답을 해 보십시오,
언제 저를 가르쳤단 말씀입니까?
저는 도무지 가르침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붉게 상기된 제자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도오는 재미있다는 투로 말했다.
"아,이녀석아! 네가 차를 가져오면 마셔주고,
밥을 가져오면 먹어 주었고,인사를 하면 머리를 숙여 줬지 않느냐."
숭신은 어리둥절 해졌다.
스승이 도대체 무슨소리를 하는건지 알수가 없었다.
흡사 자기를 놀리고 있는듯한 느낌마져 들었다.
설마 스승님이 제자를 데리고 장난을 치는것은 아니겠지?
숭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때 도오가 정색을 하며 무섭게 나무랐다.
"이놈아,무슨 생각이 그리 많아! 생각하면 곧 어긋나는 것이야!
있는 그대로 보란 말이야!" 그말에 숭신은 퍼뜩 깨쳤다.
있는 그대로 보라!
도색 하거나 포장하지 말라.
자기지식을 동원해 생각에 잠기면 점점
깨달음에서멀어질 뿐이다.
도오의 가르침이다. 평상심이 곧 도라는 뜻이다.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고,밤이면
자는 일상생활. 그 속에 도가있다.
그모든 일상적 행위를 누구의 지시를 받거나
억압 속에서 행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곧 선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이 말을 오해하기 쉽다.
그저 되는대로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질수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새겨보라.
물은 아래로 흐르고,뜨거운 것은 위로 솟고,늙으면 죽고,
죽으면 썩고,그래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것이 일상사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 평범한 이치를 영위 하면서 흔들리지 않고 사는 것.
그 속에 바로 진리가 있다.
즉 순리에 역행하지 말라는 것이다.<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