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기도 / D. 크레머

달팽이의 기도 / D. 크레머


주님,
저는 묵묵히 있습니다.

정말 기쁨에 가득 차서.
당신이 주신

내 머리에 있는 관측경으로
바깥 세계를 내다보면
나름대로의 크기가 보입니다.

시냇가의 차돌멩이는 내게
마천루로 보이고,

아침 햇살을 받아
풀잎에서 흐르는 이슬방울은 내게
폭포수로 보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도
내 지평선에는 매우 크게 부각됩니다.

당신처럼 온 누리의 모두가
머나먼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만,

그러면서도 그 모두가 당신처럼
사실상 여기 있습니다.

당신은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모두 다 사랑하시니까요.

잔디나 물가에
기어다니는 미생물까지도
당신은 잊지 않고 마음에 두고 계십니다.

나의 존재는
경고의 상징이 되지 않는지요?

평화를 모르는 이들에게
늘 재촉하는 이들에게

숨 가쁘게 바빠하는 이들에게
시간과 쉴 틈이 없는 이 시대에 말입니다.

이런 모든 이들에게 코웃음쳐주고 싶지만
비웃어 줄 코가 없습니다. 주님!

“친구여, 천천히 천천히!”라고
외쳐 주고 싶답니다.

“나는 캠핑 장막을 등에 지고도
비록 느리긴 하지만 목적지에 닿을 겁니다.

한 번도 서두르지 않고도,
심장병에 걸리지 않고도

나는 목적지에 닿는다구요!”라고
크게 외치고 싶지만,

주님, 저는 그냥
기쁨에 넘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 소리가 너무 커지면
저는 위험에 처하게 되죠.

사람들 눈에 띄게 되면
저는 프랑스의 미식가들을 위해 팔려 간답니다.

그것도 고급요리를 위해서 말입니다.
이건 정말 너무하지 않습니까, 주님!

그래서 저는 차라리 고요히
당신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프랑스 아닌 다른 곳에서는
내 삶의 기쁨을
거품으로 표현한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