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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관광도시 강화도엔 현존 최고 사찰 전등사가 있다

귀인 청솔 2016. 2. 12. 09:45

2018 관광도시 강화도엔 현존 최고 사찰 전등사가 있다

- 국난속 에서도 우리나라의 역사를 지키고 무수한 문화유적을 간직한 호국 고찰 -


○ 인천의 168개 보물섬 가운데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일컬어진다.
강화군은 지난 1월 18일 문화체육관광부 공모 결과 ‘2018 올해의 관광도시’에 최종 선정되기도 했다.

○ 강화도는 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으로 수많은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역사관광지이다. 선사 시대 고인돌 유적, 단군의 얼이 담긴 마니산과 참성단, 고려시대 제2의 수도로 대몽항쟁과 팔만대장경 조성, 근대 개항 시기 발발했던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강화도에서 펼쳐진 역사는 곧 한민족의 역사이기도 했다.
강화도에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의 사찰 ‘전등사(傳燈寺)는 그 대표적 문화유산 중의 하나다.

○ 기록에 전해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은 375년(고구려 소수림왕 5)에 세워진 초문사(肖門寺)와 이불란사(伊不蘭寺)이다.
하지만, 1942년 편찬된 「전등본말사지(傳燈本末寺誌)」에 의하면 전등사는 “신라 아도화상이 세운 바이니,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창건한 절이다. 절의 옛 이름은 진종사(眞宗寺)이다.”라고 해 전등사가 381년(소수림왕 11)에 창건된 진종사였음을 전하고 있다. 아울러, 1916년 「전등사 대웅보전 급 대조루 제4도 중수기문」에도 “전등사는 아도화상이 세웠는데,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창건한 절이다.(海東鼻昌佛宇)”라고 하고 있다.
한편, 전등사를 창건한 아도화상이 고구려의 이불란사를 창건한 아도화상과 같은 인물인지, 아니면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파한 묵호자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일부에서는 전등사의 창건연대(381년)가 백제의 불교 공인 연대(384년)에 앞선다고 하여 신빙할 수 없는 기록으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교 공인 이전에도 사찰은 얼마든지 세워질 수 있었고, 당시의 백제는 하남위례성을 수도로 하는 ‘한성백제’시기였던 만큼 한강의 입구인 강화도를 통해 불교가 전해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겠다. 따라서, 새로운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 한 현재로서는 전등사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사찰’이라는 지위에 있다.

○ 전등사의 처음 이름인 진종사는 글자 그대로 참된 종교, 혹은 참된 믿음을 추구하는 곳이라는 뜻이었는데, 전등사로 개명하게 된 것은 고려 충렬왕때(1282년) 왕비인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라는 명칭으로 고쳐 부르게 됐다.

○ 전등사는 조선시대 두 차례(1605년과 1614년) 큰 화재로 사찰 전부가 소실됐지만 지경 스님을 중심으로 재건하여 1621년 2월 옛 모습을 되찾았다. 네 기둥 위에 원숭이 형상의‘나부상(裸婦像)’으로 유명한 전등사 대웅전(보물 178호)도 이때 중건됐다.

○ 1707년(숙종 33년)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정족산사고(鼎足山史庫)를 관리하는 사찰이 되어 전등사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 근대 개항 전, 전등사는 병인․ 신미양요 등 국란에서 나라를 수호하는 국방상 요충지 역할을 했다. 또한 창건 이래 많은 인사들이 꾸준하게 찾는 수도권 최고의 호국기도 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전등사 경내에는 대웅보전, 약사전, 범종 등 보물(5점)을 비롯해 인천시 문화재(10점) 등 많은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 시 관계자는 “역사의 섬에 창건된 최고(最古)의 사찰 전등사는 여러 국난 속에서도 우리의 역사를 지켜냈다.”며 “이러한 사실을 알고 강화도를 방문해 보석과 같은 강화의 여러 역사문화유산을 둘러본다면 한층 더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인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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